이미 크뇌벨 이미 크뇌벨

이미 크뇌벨

German
1940
/

Overview

‘살아 있으려면 무언가 급진적인 일을 해야 힌다.’

이미 크뇌벨(Imi Knoebel)의 확고한 추상 미술은 형태와 색, 재료의 탐구를 통해 회화와 조각의 기본 원칙을 탐구한다. 그의 목표는 사람과 세계의 필수적인 조건 사이의 단순한 상호작용에서 찾은 미술의 기본적인 물질 요소들을 밝히는 것이다. 작가는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과 같은 작가들의 뒤를 이어 비재현적인 미술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다. 그는 말레비치의 (1915)을 봤던 순간을 자신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압도적인 느낌을 받으며 기존의 회화에 대한 개념을 해방시킨 전환적인 순간이었다고 언급한다. 또한 색의 촉각적 사용과 형태의 기하학적 어휘, 물질적 단순성을 특징으로 실험적인 접근과 연속적인 작업방식을 발전시켰다.

1940년 독일 데사우에서 클라우스 볼프 크뇌벨(Klaus Wolf Knoebel)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1962년 다름슈타트의 공업미술학교에 입학했으며, 그 곳에서 요하네스 이튼(Johannes Itten)과 라즐로 모홀리-나기(László Moholy-Nagy)의 수업을 들었다. 또한 자신처럼 말레비치 작품에 매료되었던 학교 친구 라이너 그리세(Rainer Griese)를 만났고, 그리세와 함께 ‘Ich mit Ihm(나 그와 함께)’을 축약한 ‘Imi & Imi’ 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동독의 세제 이름이기도 한 이 이름은 급진적으로 스스로를 브랜드화 하는데 아이러니컬한 반전을 더했다. 이들은 뒤셀도르프 미술대학교에 가기 위해 요셉 보이스를 설득했고, 마침내 보이스는 이후 전설이 된 강의실 20(Room 20)’과 인접한 19(Room 19)’의 열쇠를 그들에게 주었다. 이 강의실에서 크뇌벨은 초기 작업으로 정의되는 (1968)를 제작한다. 이 작품은 그가 줄곧 사용했던 평범한 산업재료인 메이소나이트(Masonite, 미국 상표의 목재 건축 자재)를 채색하지 않고 사용한 것으로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된 모듈식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미 크뇌벨(Imi Knoebel)의 확고한 추상 미술은 형태와 색, 재료의 탐구를 통해 회화와 조각의 기본 원칙을 탐구한다. 그의 목표는 사람과 세계의 필수적인 조건 사이의 단순한 상호작용에서 찾은 미술의 기본적인 물질 요소들을 밝히는 것이다. 작가는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과 같은 작가들의 뒤를 이어 비재현적인 미술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다. 그는 말레비치의 <Black Square>(1915)을 봤던 순간을 자신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압도적인 느낌을 받으며 기존의 회화에 대한 개념을 해방시킨 전환적인 순간이었다고 언급한다. 또한 색의 촉각적 사용과 형태의 기하학적 어휘, 물질적 단순성을 특징으로 실험적인 접근과 연속적인 작업방식을 발전시켰다.

1940년 독일 데사우에서 클라우스 볼프 크뇌벨(Klaus Wolf Knoebel)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1962년 다름슈타트의 공업미술학교에 입학했으며, 그 곳에서 요하네스 이튼(Johannes Itten)과 라즐로 모홀리-나기(László Moholy-Nagy)의 수업을 들었다. 또한 자신처럼 말레비치 작품에 매료되었던 학교 친구 라이너 그리세(Rainer Griese)를 만났고, 그리세와 함께 ‘Ich mit Ihm(나 그와 함께)’을 축약한 ‘Imi & Imi’ 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동독의 세제 이름이기도 한 이 이름은 급진적으로 스스로를 브랜드화 하는데 아이러니컬한 반전을 더했다. 이들은 뒤셀도르프 미술대학교에 가기 위해 요셉 보이스를 설득했고, 마침내 보이스는 이후 전설이 된 강의실 20(Room 20)’과 인접한 19(Room 19)’의 열쇠를 그들에게 주었다. 이 강의실에서 크뇌벨은 초기 작업으로 정의되는 <Raum 19>(1968)를 제작한다. 이 작품은 그가 줄곧 사용했던 평범한 산업재료인 메이소나이트(Masonite, 미국 상표의 목재 건축 자재)를 채색하지 않고 사용한 것으로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된 모듈식 구조를 취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크뇌벨은 점점 더 형상이 있는 알루미늄을 회화의 바탕으로 사용하였고, 안료와 그 경계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는 기하학적인 색면을 만들었다. 형태가 있는 지지체의 사용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와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같은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작업을 시각적으로 연상시키지만, 크뇌벨의 회화에는 제스처적인 붓질로 인해 작가의 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미술사가인 막스 웩슬러(Max Wechsler)회화적 지지체는 알루미늄 위의 회화에 대한 한계를 확고히 설정하고, 크뇌벨은 이를 붓질로 어느 정도 다루지만, 한편으로 […] 내부적 구성으로 거의 독립적이 되는 소규모 치밀화에 반대함으로써 저항할 수도 있다.’고 기술했다.

크뇌벨은 1975년 뒤셀도르프 미술관(Kunsthalle Düsseldorf), 1983년 빈터투어 미술관(Kunstmuseum Winterthur)과 본 미술관(Kunstmuseum Bonn), 1992년 함부르크 다이히토어할렌(Deichtorhallen Hamburg)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카셀 도쿠멘타(documenta in Kassel) 5(1972), 6(1977), 7(1982)에 참여했다. 1996년 뮌헨의 현대 미술관인 하우스 데어 쿤스트(the Haus der Kunst)는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을 기획했으며, 하노버의 케스트너 게젤샤프트(Kestner Gesellschaft)2002년 개관 75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전시를 선보였다. 2008년 뉴욕 디아비콘(Dia: Beacon, New York)은 그의 친구이자 동료 예술가였던 블링키 팔레르모(Blinky Palermo)가 사망한 직후 제작된 연작 <24 Farben – für Blinky>(1977)를 전시했으며, 이듬해 베를린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 Berlin)에서 그의 주요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2011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피해를 입은 프랑스 랭스 대성당(Reims Cathedral)을 위해 6개의 기념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제작했으며, 2014년 볼프스부르크 미술관(Kunstmuseum Wolfsburg, Wolfsburg)에서 작가의 75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지난 50년 간의 작품들을 총 망라하여 살펴보는 회고전이 열렸다. 2016년 국립 페르낭 레제 미술관(Musée National Fernand Léger, Biot)에서 페르낭 레제의 도자 작품과 호응하는 작품을 선보였으며, 2018년 취리히의 하우스 컨스트럭티브 미술관(Museum Haus Konstruktiv, Zürich)에서 회고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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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p Exhibition Eurasia. A View on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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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 Knoebel Weiss Schwarz

Imi Knoebel

Weiss Schwarz
2010
Imi Knoebel: Weiss Schwarz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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