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로젠퀴스트 재단
Overview
‘나는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캔버스의 환영적 표면을 지나 내 머릿속의 아이디어와 충돌하는 공간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는 1960년대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등과 함께 미국 팝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들은 각각의 고유한 스타일을 발전시켰지만, 상업적인 예술기법의 사용과 대중적 이미지, 일상 오브제의 묘사라는 이미지 제작 방식에 있어서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으며, 이는 이후 팝 아트 운동을 정의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당시 그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로젠퀴스트의 빌보드 페인팅은 작가로서 그의 초기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회화 장르가 재정의되던 시대에 매체의 경계를 확장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인식과 이미지, 채색된 매체, 그리고 그 자체가 지닌 가능성을 시험하고, 미국인의 경험에 내재된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구상과 콜라주, 일상 오브제를 결합시켰다.
미국 노스다코타 주의 그랜드포크스에서 태어난 로젠퀴스트는 미네소타 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 1952-54)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Art Students League, New York)에 입학했으며,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바, 시다 태번(Cedar Tavern)에 자주 방문하여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과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밀튼 레스닉(Milton Resnick)과 어울렸다. 이후 기념비적인 광고판과 추상화를 제작하는 일을 하다가 1960년대 상업적인 회화를 그만두고, 뉴욕 코엔티스 슬립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로젠퀴스트는 잡지에서 이미지를 오리고, 조각내고, 다시 채색하여 능숙하고 제스처 있는 간판 그림과 결합했으며, 이를 통해 2세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 구분되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의 동료 작가들과 차별화되었다. 고인이 된 미국인 큐레이터 발터 홉스(Walter Hopps)가 ‘시각적인 시’에 비유했던 로젠퀴스트의 작품은 경제적, 낭만주의적, 생태학적 문제부터 과학적, 우주적, 실존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는 1960년대 앤디 워홀(Andy Warhol), 로이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등과 함께 미국 팝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들은 각각의 고유한 스타일을 발전시켰지만, 상업적인 예술기법의 사용과 대중적 이미지, 일상 오브제의 묘사라는 이미지 제작 방식에 있어서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으며, 이는 이후 팝 아트 운동을 정의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당시 그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로젠퀴스트의 빌보드 페인팅은 작가로서 그의 초기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회화 장르가 재정의되던 시대에 매체의 경계를 확장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인식과 이미지, 채색된 매체, 그리고 그 자체가 지닌 가능성을 시험하고, 미국인의 경험에 내재된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구상과 콜라주, 일상 오브제를 결합시켰다.
미국 노스다코타 주의 그랜드포크스에서 태어난 로젠퀴스트는 미네소타 대학교(University of Minnesota, 1952-54)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Art Students League, New York)에 입학했으며,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바, 시다 태번(Cedar Tavern)에 자주 방문하여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과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밀튼 레스닉(Milton Resnick)과 어울렸다. 이후 기념비적인 광고판과 추상화를 제작하는 일을 하다가 1960년대 상업적인 회화를 그만두고, 뉴욕 코엔티스 슬립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로젠퀴스트는 잡지에서 이미지를 오리고, 조각내고, 다시 채색하여 능숙하고 제스처 있는 간판 그림과 결합했으며, 이를 통해 2세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 구분되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의 동료 작가들과 차별화되었다. 고인이 된 미국인 큐레이터 발터 홉스(Walter Hopps)가 ‘시각적인 시’에 비유했던 로젠퀴스트의 작품은 경제적, 낭만주의적, 생태학적 문제부터 과학적, 우주적, 실존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50년이 넘도록 영향력 있는 작품을 제작해온 로젠퀴스트는 회화와 콜라주, 드로잉, 판화를 지속적으로 능숙하게 다뤘다. 그의 첫 개인전은 1962년 리처드 벨라미(Richard Bellamy)의 그린 갤러리(Green Gallery, New York)에서 개최되었고, 이듬해 솔로몬 R. 구겐하임(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에서 큐레이터 로렌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가 기획한 《Six Painters and the Object》에 참여하여, 짐 다인(Jim Dine)과 제스퍼 존스(Jasper Johns),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 앤디 워홀(Andy Warhol)과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 1985년 덴버 미술관(Denver Art Museum, Denver)에서 기획한 《James Rosenquist: Paintings 1961–1985》은 이후 휴스턴 현대미술관(Contemporary Arts Museum, Houston)과 디모인 아트센터(Des Moines Art Center, Des Moines), 올브라이트 녹스 미술관(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국립 미국미술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 Washington, D.C.)을 순회했다. 1991년 모스크바 트레치아미술관(Tretyakov Gallery, Moscow)에서 있었던 로젠퀴스트의 전시는 냉전 이후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미국 미술작가의 전시 중 하나였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솔로몬 R. 구겐하임에서 기획한 그의 회고전은 메닐 컬렉션(Menil Collection)과 휴스턴 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 Bilbao), 볼프스부르크 미술관(Kunstmuseum Wolfsburg, Wolfsburg)을 순회했다. 2017년 로젠퀴스트가 타계한 이후, 루드비히 미술관(Museum Ludwig, Cologne)과 오르후스 아로스 미술관(ArOS Aarhus Art Museum, Aarhus)은 그의 작품을 총 망라하는 《James Rosenquist: Painting as Immersion》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