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라우센버그 재단
Overview
‘회화는 예술과 삶, 모두와 관련이 있다. 둘 다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예술과 삶의 간극에서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6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동안 광범위한 경험, 평생에 걸친 협업, 새로운 소재와 기술에 대한 실험 정신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해왔다. 그는 특정한 사조로 구별되기를 거부했지만 추상 표현주의 이후 거의 모든 전후 예술 발전의 선구자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초기 작품인 는 회화와 조각, 핸드메이드와 레디메이드 사이, 예술가의 손과 기계적으로 재생산된 이미지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에 대해 다루었다. 그는 일상적인 물건을 포함시켜 사진계에 혁명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를 '거리에서 얻은 선물(gifts from the street)'이라고 불렀으며 예술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 작품의 경계를 재정의하고 확장했다.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60년이 넘는 작가 생활 동안 광범위한 경험, 평생에 걸친 협업, 새로운 소재와 기술에 대한 실험 정신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해왔다. 그는 특정한 사조로 구별되기를 거부했지만 추상 표현주의 이후 거의 모든 전후 예술 발전의 선구자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초기 작품인 <Combines>는 회화와 조각, 핸드메이드와 레디메이드 사이, 예술가의 손과 기계적으로 재생산된 이미지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에 대해 다루었다. 그는 일상적인 물건을 포함시켜 사진계에 혁명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를 '거리에서 얻은 선물(gifts from the street)'이라고 불렀으며 예술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 작품의 경계를 재정의하고 확장했다.
라우센버그는 미국 캔자스시티 아트 인스티튜트(Kansas City Art Institute)와 파리 줄리앙 아카데미(Académie Julian)에서 수학하였지만, 젊은 예술가로서 조형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탐구하게 된 것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실험적인 학교 블랙 마운틴 칼리지(Black Mountain College)에서였다. 그는 1948년 그 학교에 등록했는데 그곳에서 동료 예술가이자 후에 그의 아내가 되는 수잔 베일(Susan Weil)을 만났다. 또한 화가이자 바우하우스(Bauhaus) 교사로 재직했던 요제프 알버스(Josef Albers)에게 사사했으며, 오랜 친구이자 예술적 동료가 된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와 안무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과도 교류하였다. 세 사람은 시, 음악, 무용, 영화를 결합한 멀티미디어 퍼포먼스인 <Theatre Piece No. 1>(1952)과 천장에 매달린 라우센버그의 <White Paintings>(1951) 작업에 참여했다. 존 케이지는 이에 영감을 받아 <4'33''>(1952)를 작곡함으로써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소리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프레임워크를 확립한 바 있다.
1953년 말까지 라우센버그는 자신이 발견한 재료와 물건들을 그의 <Red Paintings>(1953-54)에 통합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의 획기적인 작품 <Combines>가 탄생하게 되었다. 염소 박제부터 도로 표지판, 침대의 퀼트 이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결합된 이 작품들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관람자와 작품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창출했다. 1962년, 그는 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자신의 사진으로부터 가져온 실크 스크린 이미지와 붓놀림을 결합하여 회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1963년 뉴욕 유대인박물관(Jewish Museum)에서 작가의 첫 번째 회고전을 가졌고 그 이듬해인 1964년에 개최된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에서 국제 회화 부문 대상을 수여받았다.
이후 라우센버그는 수십 년에 걸쳐 전 세계의 연주자, 장인 및 엔지니어와의 협업을 해왔다. 작가는 안무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 폴 테일러(Paul Taylor) 등의 전위적 작품을 위한 조명, 세트 및 의상 디자인은 물론, 1963년 <Pelican>을 시작으로 자신의 공연을 위한 안무도 기획했다. 그는 엔지니어 빌리 클뤼버(Billy Klüver), 프레드 발트하우어(Fred Waldhauer) 및 아티스트 로버트 휘트먼(Robert Whitman)과 함께 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예술과 기술 실험, E.A.T.)을 공동 설립하였다. 이는 아티스트와 엔지니어의 협업 프로젝트로, 라우센버그는 클뤼버와 함께 트랜지스터 라디오 기술을 통합한 <Oracle>(1962–65)과 반응형 조명 설치물인 <Soundings>(1968)와 같은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1970년에는 플로리다주 캡티바에 영구적으로 터를 잡고 버려진 상자로 만든 벽 부조 작품 <Cardboards>(1971~72)와 꿰맨 천으로 제작한 <Jammers>(1975–76)를 비롯한 물질성(materiality)에 중점을 둔 여러 작품을 창작하였다. 더불어, 용매 전사 작품 <Hoarfrosts>(1974–76), 멀티미디어 작품 <Spreads>(1975–83)는 물론, <Shiners>(1986–93), <Urban Bourbons>(1988-96) 및 <Borealis>(1988-92) 등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금속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인쇄 기술에 대한 실험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라우센버그는 자신의 예술 활동 외에도 예술가와 창작 커뮤니티 전체의 대변인으로써 1970년 9월, 비상금으로 예술가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인 Change, Inc.를 설립했으며 1984-91년에는 Rauschenberg Overseas Culture Interchange(ROCI) 프로젝트에 개인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라우센버그는 이 광범위한 투어 프로그램을 위해 멕시코, 칠레, 베네수엘라, 중국, 티베트, 일본, 쿠바, 소비에트 연방, 독일, 말레이시아 등 10개국을 다니며 창의적인 과정을 통한 문화간 대화와 이해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했다.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은 2015년 4월부터 로버트 라우센버그 재단(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을 대표해왔다.